조선 말기의 조계종 승려였던 백파 긍선의 저술서로, 「삭발편(削髮篇)」을 시작으로 「소석회송(燒席灰頌)」까지 2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비의식을 다룬 것이지만 의례집은 아니며, 다비의식을 선(禪)의 입장에서 해석한 문헌이다.
원래의 집필 시기는 1812~1816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는 본문의 말미에 ‘소림굴사문긍선술(少林窟沙門亘璇述)’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파는 1812년부터 5년간 평안도 초산의 용문암에서 정혜결사를 결성하여 참선하였고, 그 때 자신의 방을 소림굴이라 불렀다.
필사본 1책이다. 1899년에 경상도 진주(현 산청) 지리산의 대원사(大源寺)에서 간행되었다. 『한국불교전서』 제12책에 동국대학교 소장본이 수록되어 있다.
백파가 살았던 조선 말기에는 다비에 관한 의례집이 여럿 있었으므로 그 의식절차를 기록한 의식집을 새로 간행할 필요는 없었다. 따라서 『다비설(茶毘說)』은 불교의 화장인 다비의식을 선사상으로 풀이한 해설집이다.
총 23편으로 구성되는데, 다비의식의 절차에 따라 「삭발편」·「목욕편(沐浴篇)」·「세수편(洗手篇)」·「세족편(洗足篇)」·「착군편(着裙篇)」·「착의편(着衣篇)」·「착관편(着冠篇)」·「정좌편(正坐篇)」·「입감편(入龕篇)」·「발인송(發引頌)」·「거감편(擧龕篇)」·「보례삼보(普禮三寶)」·「노제편(路祭篇)」·「상대후사게(上臺後四偈)」·「반혼편(返魂篇)」·「거화편(擧火篇)」·「하화편(下火篇)」·「표백편(表白篇)」·「습골편(拾骨篇)」·「기골편(起骨篇)」·「쇄골편(粹骨篇)」·「산골편(散骨篇)」·「소석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파의 선적인 해석의 예로, 「거화편」에서는 “이 불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법계를 두루 비추는 대지혜의 광명이다. 이것은 본분의 신묘한 작용이어서 삼세간의 탐진번뇌의 불이 아니다.(此火是自心中 遍照法界之大智光明 故是本分妙用 則非三世間貪嗔煩惱火)”라고 말한다. 거화(擧火)란 다비의식에서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불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광명임을 말한 것이다.
또 『한국불교전서』 제12책(p.257a~b)에 수록된 글에서 백파는 “(석가모니가 열반하신) 니련선하의 옆에는 사라림이 있고, 사방(四方)에는 각각 쌍림이 잎이 시들었다가 무성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사고(四枯)란 비유하면 여래선의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의 권사덕(權四德)과 같고, 사영(四榮)은 조사선의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실사덕(實四德)과 같다 …(중략)… 이것은 사조용(四照用)을 나타내니, 동방의 쌍림은 선용후조(先用後照)이고, 서방의 쌍림은 선조후용(先照後用)이며, 남방의 쌍림은 조용동시(照用同時)이고, 북방의 쌍림은 조용부동시(照用不同時)이다.(泥蓮沙側 有娑羅林 四方各有雙林之一枯一榮也 四枯喩如來禪無常苦無我不淨權四德也 四榮喩祖師禪常樂我淨實四德也 …(중략)… 此表四照用 東方雙者 先用後照 西方雙者 先照後用 南方雙者 照用同時 北方雙者 照用不同時也)”라고 해설한다.
사라림(娑羅林)에 있는 쌍수(雙樹)의 고영(枯榮)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나타낸다는 것은 『대열반경(大涅槃經)』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백파는 여래선과 조사선에 배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사방의 쌍수의 고영을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사조용(四照用)에 배대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비설』은 불교식 화장인 다비의식을 선적으로 해석한 것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이 타당한 것인가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또한 의례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고, 단지 필사본 1본만이 동국대학교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