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와 병조에 소속되었던 서리이다. 조선 초기 이조에 20여인, 병조에 40여인, 조선 후기 이조에 30여인, 병조에 110여인의 서리가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조와 병조 두 기관은 문관과 무관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서리들의 영향력도 컸다.
따라서, 관리들 중 두 기관의 서리들과 결탁하여 인사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과정에서 단골서리라는 호칭이 생기게 되었다. 서리들도 새로 부임하는 지방관들에게 당참채(堂參債 : 사례금품)를 요구하는 등 농간을 부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