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에서 사용되던 척도이다. 당대척은 유흠(劉歆)의 「거서누서설(秬黍累黍說)」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던 당소척(唐小尺)의 1척 2촌 길이인데, 당소척이 악률척(樂律尺)인 데 대하여 당대척은 실용적인 척도였다.
이 척도의 시작은 북위후척(北魏後尺: 길이 29.67㎝)이며, 이것이 후주를 거쳐 수나라의 개황관척(開皇官尺)으로 전수되었다가 당나라로 전수된 척도이다. 당나라에서의 당대척 길이는 29.5∼31㎝였다.
이러한 당대척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통일신라 이후로, 당대척이 사용된 흔적은 석굴암과 불국사 석가탑과 첨성대 등에서 볼 수 있다. 석굴암 건설의 당대척은 29.706㎝, 불국사 석가탑 건조의 당대척은 30.024㎝로 밝혀졌다.
또, 고려 문종 때 미곡용(米斛用) 표준 양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된 당대척 길이는 29.601㎝로 밝혀져, 고려의 미곡용 당대척은 수나라 개황관척과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당대척은 고려 이후 조선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명나라 영조척이 대신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다시 당대척이 일본을 거쳐 곡척(曲尺)이라는 명칭으로 도입되어 최근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곡척의 길이는 30.3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