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사리원역에서 동남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으로, 대략 사방 350m 정도의 구릉 위에 축조된 토성이다.
일명 고당성(古唐城)이라고도 한다. 둘레는 대략 4리(里)이고 높이는 24척(尺)이다. 앞에는 토성평(土城坪)이라고 하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성에서는 중국의 한(漢)·진(晉) 시대의 기와와 벽돌이 많이 나왔는데, 벽돌들 가운데는 후한 시대(後漢時代)에 해당하는 ‘光和五年(광화5년)’(182)과 서진(西晉)의 ‘泰始七年(태시7년)’(271)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벽돌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터의 주변에는 수많은 전축고분(塼築古墳)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이 성터에서 약 1㎞ 정도 거리에 있는 태봉리제1호고분(胎封里第一號古墳)에서 발견된 묘전(墓塼)의 ‘使君帶方太守張撫夷(사군대방태수장무이)’라는 명문으로 미루어보아, 이 무덤은 대방군 태수의 무덤이고, 연대는 288년경으로 보이며, 이로써 이곳이 대방군의 치소(治所)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유물과 유적에 의해서 이것은 바로 대방군의 중심적인 성터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