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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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예문관과 규장각에 소속된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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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예문관과 규장각에 소속된 관직.
내용

예문관대교는 2인으로 정8품직이었다. 1401년(태종 1) 예문춘추관을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관하면서 종래의 정8품 수찬(修撰)을 대교로 개칭하여 예문관에 속하게 한 것이다. 봉교·검열과 함께 ‘팔한림(八翰林)’으로 지칭되었고,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다.

조선시대 청요직의 하나로, 왕의 측근에서 군신의 대화와 거동을 기록하고 시정기(時政記)를 작성하며 사고(史庫)의 서적을 관리하였다. 규장각대교는 정원이 1인이며 정7품∼정9품의 문관 중에서 선임하였다.

대교는 1776년(정조 즉위년) 규장각을 창설하면서 설치되기도 하였다. 직각(直閣) 1인과 함께 규장각의 핵심관원으로서 역대 국왕들의 친필문헌·서화 및 왕실도서를 관리하는 내각의 실무담당 부책임자였다.

각신으로 불린 조선 후기의 청요직으로서 여기에는 한림으로 권점(圈點)을 받은 사람, 승정원주서나 세자시강원설서로 천망된 문관 중에서 규장각 관원들이 권점으로 추천하게 하였다. 직각과 대교는 타관직으로 옮겨간 뒤에도 계속 겸직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규장각지(奎章閣志)』
「조선전기(朝鮮前期)의 사관(史官)」(차장섭, 『경북사학(慶北史學)』6, 1983)
「규장각고(奎章閣考)」(김용덕, 『중앙대학교논문집(中央大學校論文集)』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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