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오기(新羅五伎)의 하나. 최치원(崔致遠)은 그의 <향악잡영 鄕樂雜詠> 5수에서 대면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누런 금빛 탈을 썼다 바로 그 사람, 방울채를 손에 쥐고 귀신을 쫓네. 자진모리 느린 가락 한바탕 춤은, 너울너울 봉황새가 날아드는 듯(黃金面色是其人 手抱珠鞭役鬼神 疾步徐趨呈雅舞 宛如丹鳳舞堯春).”
“누런 금빛 탈을 썼다 바로 그 사람, 방울채를 손에 쥐고 귀신을 쫓네.”라는 구절로 보아, 당대(唐代) 오기의 하나인 대면희(代面戱, 大面戱)나 일본에 전하는 좌방무(左方舞)의 ‘난릉왕(蘭陵王)’과도 비교되는 일종의 구나무(驅儺舞)이다.
이 대면희는 “향토색이 짙은 가면구나무(假面驅儺舞) (梁在淵)이다.”라고도 하고, 또는 “금색가면(金色假面)을 쓴 주술자(呪術者)가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종교성의 무용극이니 시방 티베트(西藏)의 풍속을 연상하게 하는 것”(崔南善)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티베트를 말한 것은 라마묘(喇嘛廟)의 타귀행사(打鬼行事)를 가리킨 듯하다. 당대의 대면희는 구자(龜玆:서역의 나라로 지금의 庫車 부근) 전래의 구나가면무를 북제(北齊)난릉왕의 고사에 결부시키고 모방하여 대면희가 되었고, 이것이 우리 나라에 영향을 주어 대면희나 검무의 성립에 도움을 주었다고 추정된다.
호무구자곡(胡舞龜玆曲)인 가면무에도 연희자가 금은으로 장식한 가면을 쓰고 주옥으로 옷에 치장을 하였다고 하는데, 당나라의 대면희에도 연희자가 자색옷에 금빛 채찍을 허리에 찼다고 하였고, 신라오기의 대면희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셋이 같은 계열의 구나무임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 나라의 가면 중 대면을 찾으면 호우총(壺杅塚) 출토의 귀면형으로 된 목심칠면(木心漆面)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푸른 유리 눈알을 금테두리로 둘렀고, 뿔에는 황금으로 된 정구형의 장식이 붙어 있다. 황금색이 적색과 더불어 벽사색(辟邪色)이라는 점에서 이 가면 역시 구나무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신라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