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활자본. 1789년(정조 13)에 간행하였으며, 권두에 자서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는 윤림(尹臨) 등 22편, 권3·4는 윤천구(尹天衢) 등 10편, 권5·6은 윤유(尹柔) 등 17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림은 태종 때 함길도관찰사(咸吉道觀察使)로 북방의 국경지대를 개척하고 야인을 몰아내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고, 윤혜(尹譓)는 이조좌랑으로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사양하자 벼슬을 버리고 절의를 지켰으며, 윤효손(尹孝孫)은 좌참찬으로서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를 편저할 때 참여하였다.
윤형(尹衡)은 불교배척에 앞장섰으며, 윤강원(尹剛元)은 사간으로서 윤원형(尹元衡)이 세도를 잡아 사림을 탄압하고 국권을 농락하자 이를 탄핵하였고, 윤자신(尹自新)은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윤여익(尹汝益)은 임진왜란 때 근왕병을 이끌고 적과 싸워서 많은 공적을 세우고 전사하였으며, 윤기(尹祁)는 병자호란 때 절의를 지켰고, 윤운구(尹雲衢)는 공조정랑을 지냈는데 송광유(宋匡裕)의 무고에 의하여 원사한 사실이 있다.
윤계(尹棨)는 암행어사로 호남지방에서 활약하여 민폐를 근절하고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병자호란 때 의절하였다. 윤집(尹集)은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서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어가를 호종하였고, 척화공신으로 청나라 연경(燕京)에 끌려가서 죽음을 당하였다.
그밖에도 충신·효자·문장 들이 많이 나와 남의 모범이 되는 언행을 많이 남기고 있음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