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둥글다 [원]
부수 囗 총획 13
곧다 [각] 비교하다 [각] 깨다 [교] 깨우다 [교]
부수 見 총획 20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터 [지]
부수 土 총획 7
처음 [대] 일찍 [대]
부수 大 총획 3
둥글다 [원]
부수 囗 총획 13
곧다 [각] 비교하다 [각] 깨다 [교] 깨우다 [교]
부수 見 총획 20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전기
- 국가문화유산
- 이칭대원각사비
- 건립 시기1471년
- 관련 국가조선
- 관련 인물김수온(金守溫), 서거정(徐居正), 성임(成任), 정난종(鄭蘭宗), 강희맹(姜希孟)
- 너비130㎝
- 높이490㎝
-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 양식귀부이수형
- 재질돌(대리석)
- 명칭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서울 圓覺寺址 大圓覺寺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3번지 탑골공원
-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정충락 (서예가)
- 최종수정 2026년 05월 29일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정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사적비.
내용
비문은 당대 명신들이 짓고 썼는데,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金守溫) · 성임(成任), 뒷면의 추기(追記)는 서거정(徐居正) · 정난종(鄭蘭宗)이 각각 짓고 썼다. 대리석제의 비는 마멸이 심하여 전혀 알아볼 수 없는데, 다행히 비문의 내용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려 있다.
반구형의 이수는 비신과 한 돌로 보주를 받든 형상의 쌍룡을 조각하였다. 이수 아래쪽에는 ‘大圓覺寺之碑(대원각사지비)’라는 전액을 강희맹(姜希孟)의 글씨로 새겼다. 귀부는 둔중한 몸체로 일반적인 육각형 귀갑문 대신에 사다리꼴 평행 세선을 새겼으며 연잎 모양의 비좌(碑座)와 물고기 비늘을 조각한 꼬리나 다리가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당비(唐碑)의 형식을 따른 복고적인 석비로, 이수부에 전액(篆額)이 새겨져 있고 조각이 화려하여 고전적인 석비양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속동문선(續東文選)』
- 『서울문화재대관』(서울특별시, 1987)
- 『국보』7 석조(정영호 편, 예경산업사, 1984)
- 『朝鮮金石總覽』下(京城: 朝鮮總督府, 191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