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귀부 높이 112㎝, 이수 높이 75㎝.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玄覺禪師)를 기리기 위해 979년(경종 4)에 건립되었다. 현재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이 남아 있다. 조각 수법은 당대의 탑비 양식을 잘 따르고 있는데, 몸체에 비해 큰 귀두(龜頭)나 비좌(碑座) 4면에 새긴 안상(眼象)과 귀꽃이 특색이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제액이 있는데 ‘玄覺禪師碑銘(현각선사비명)’ 6자가 2행, 행 3자씩 전서로 음각되어 있다.
기록이나 옛 탁본에 의하면 비문은 학사(學士) 왕융(王融)이 지었고, 동정주국(同政柱國) 장신원(張信元)이 썼다고 전한다. 글씨는 2㎝ 정도의 해서로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바탕으로 하면서 자형을 바르게 하여, 고박한 형태미(形態美)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