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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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제천 월광사지 전경
제천 월광사지 전경
서예
유적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승려 원랑선사의 탑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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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승려 원랑선사의 탑비.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3.95m, 비신 높이 2.26m, 너비 97㎝, 두께 24㎝.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지에 있던 것을 1922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석비 형식을 따랐으며, 전체적인 비례가 잘 조화된 단아한 조형이다. 890년(진성여왕 4)에 건립되었다.

비의 주인공인 원랑선사는 856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편력하고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무르면서 선문(禪門)을 빛나게 하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은 ‘원랑선사’라 추시(追諡: 죽은 후에 시호를 내림)하고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문은 문신인 김영(金穎)이 짓고 글씨는 승려 서예가 순몽(淳蒙)이 썼는데, 계선(界線) 안에 2㎝ 정도로 쓴 구양순(歐陽詢)체의 해서이다. 현재 월광사 터에는 탑의 부재 일부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서울금석문대관』(서울특별시, 1987)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國書刊行會, 1935)
『朝鮮金石總覽』上(京城: 朝鮮總督府, 1919)
집필자
정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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