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화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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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화상 비
서당화상 비
서예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내동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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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내동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탑비.
내용

높이 86㎝, 너비 93㎝, 두께 23㎝. 1914년 발견된 서당화상원효(元曉)의 비이다. 단석(斷石) 3개로 원비(原碑)의 하반부에 해당되며, 현재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이전, 보관되어 있다.

한편, 1968년 경주시 동천동분황사 북쪽 동천사지(東泉寺址)로 전칭되는 부근 농가에서 원비의 향좌(向左) 상부에 해당되는 또 하나의 단석이 발견되었는데, 이전의 단석과 아래위로 연결된다.

삼각형으로 세로 45㎝, 가로 51㎝, 두께 24㎝로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의 내용을 통해 혜공왕대(765∼779) 말년이나 원효대사의 백년기(百年記)인 785년(선덕왕 6)으로 보아왔으나, 뒤에 발견된 단비로 인해 9세기초(800∼808)로 새롭게 추정되었다.

원효대사의 손자 중업(仲業)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비문의 찬자(撰者)는 미상이다. 글씨는 2㎝ 정도의 행서로 모두 33행이며, 구양순(歐陽詢)의 행서를 집각(集刻)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뛰어나다.

참고문헌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서울금석문대관(金石文大觀)』(서울특별시, 1987)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황수영, 일지사, 1976)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國書刊行會, 1935)
「신라서당화상비(新羅誓幢和上碑)의 신편(新片)」(황수영, 『고고미술』108, 1970)
「신라서당화상비(新羅誓幢和上碑)의 재검토(再檢討)」(김상현, 『초우황수영박사고희기념한국미술사학논총』, 통문관,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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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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