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371㎝, 비신 높이 165㎝, 너비 78㎝, 두께 13㎝.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전하나, 점판암의 비신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으로 둔중하다. 이수에는 형식적인 운룡문이 새겨져 있고, 앞면 가운데에는 ‘圓覺國師碑銘(원각국사비명)’이라는 전액(篆額)이 양각되어 있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1174년(명종 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문에는 찬자(撰者)·서자(書者)와 건립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동국여지승람』과 『대동금석서』에 의하면 찬자는 한문준(韓文俊)이며 건립 연대는 1180년이다.
글씨는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로, 당시 성행한 사경(寫經)의 영향이라고 본다. 비의 뒷면에는 원각국사 문도들의 직명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