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편안하다 [강] 즐기다 [강]
부수 广 총획 11
나루 [진] 별 이름 [진]
부수 水 총획 9
한달 [월] 성 [월]
부수 月 총획 4
남녘 [남]
부수 十 총획 9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터 [지]
부수 土 총획 7
참 [진]
부수 目 총획 10
곧다 [각] 비교하다 [각] 깨다 [교] 깨우다 [교]
부수 見 총획 20
나라 [국]
부수 囗 총획 11
선생님 [사] 어른 [사]
부수 巾 총획 10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 명칭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6-1 (월남리) / (지번)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13-1,815-1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603130000
- 위도34.7427266143411
-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정충락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와 비각 우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진각국사의 탑비.
내용
편마암의 석비가 오랜 풍상에 마멸되고 깨져 현재 비신 일부와 귀부만 남아 있다. 마멸이 극심하여 비신의 앞면은 판독이 전혀 불가능하고 비신의 옆면은 비어 있으나 비음(碑陰: 비의 뒷면)에 지름 3.3㎝ 정도의 글자 30행 600여 자가 남아 있다. 전체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당시의 명신이었던 최항(崔沆) 등의 이름이 보이며, 서체는 왕희지(王羲之)의 서풍을 충실히 반영한 당태종(唐太宗)의 필의가 완연하다. 구전에 의하면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가 지었다고 한다.
대석과 귀부(龜趺)는 한 돌이며, 귀부는 네 발의 발톱에 보이는 사실성이나 머리, 목 등 세부의 생동감 있는 표현 등 강렬한 사실적 조각기법을 보인다.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6 보물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서예술학』(정충락, 미술문화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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