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처소인 대전에 배치되어 번갈아가며 근무하는 던 환관직이다. 조선 전기는 출입번의 인원수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후기의 ≪대전통편≫에는 대전에 42인, 왕비전에 12인, 세자궁에 12인, 빈궁에 8인을 배정하였다.
이들은 당번인 입번(入番) 때나 비번인 출번(出番) 때나 모두 근무일수 1일로 계산되었고, 근무일수에 따른 승진규정은 4품까지는 문무관과 같았으나, 그 이상은 왕명에 의하였다. 직무는 왕의 측근에서 시중을 들거나 왕명을 전달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