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있는 관개농업 초기의 저수지.
내용
우리 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시대에서 그 기원이 밝혀지고 있으나, 커다란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초기 철기시대인 서력기원 전후 시기에 가능했다고 믿어진다. 이 시기에 유명한 상주 공검지(恭儉池), 김제 벽골제(碧骨堤), 밀양 수산제(守山堤), 제천 의림지(義林池) 등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성 대제지는 지금은 거의 형체를 알 수 없도록 잊혀져 가고 있다. 경상도지역에는 15세기까지 곳곳에 많은 관개용 저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제(大堤)란 그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것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당시의 여러 제언(堤堰:댐)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규모가 표시되지 않은 제언으로는 대구의 성당(聖堂)·불상(佛上)·둔동(屯洞)·부제(釜堤), 성주의 동정자제(東亭子堤)·소비곡제(所非谷堤)·극지제(極只堤)·죽제(竹堤)·소리제(所里堤)·사라제(沙羅堤) 등이 있다. 의성 대제지가 15세기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이때까지는 메워져서 경작지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
- 「한국수전의 기원」(이병도, 『두계잡필』, 일조각,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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