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朴容萬)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단원 350명을 규합하여 1919년 3월에 조직하였다. 이 단체의 목적은 독립운동에 한국민족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원동(遠東)의 각 단체와 더불어 대동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운동자금을 모금, 각지와 연락하여 군사운동을 후원하며, 출판과 외교사업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또, 1919년 갈리히연합회에서 창간한 『태평양시사(太平洋時事)』를 인수하여 기관지로 삼았다. 1919년 박용만은 하와이를 떠나 중국 북경(北京)에 가서 군사운동단체들과 연락하며 군사통일회를 조직, 군사운동에 노력하자 이 단에서는 그 운동 후원자금을 모금하여 송금하였다.
1925년 7월 이 단체에서는 독립운동후원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정책을 세웠다. 먼저 중국에 대본공사(大本公社)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자본은 국민군단의 여재금과 일반단원의 출자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이 단체가 대본공사를 중국에 설립하려 한 것은 중국땅의 미간지를 매득, 이를 개척하여 항일무장투쟁의 근거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 단체는 이처럼 직접적인 독립운동은 중국·만주 지역의 동포들에게 일임하고, 하와이에서는 이를 지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신문출판과 아동교육, 상조계조직 등 단원들의 단합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7년 이 단체에서는 하와이 호놀룰루 팔라마지방에 국어학교를 설립, 학교명을 우성학교라 하였으며, 박용만이 저술한 교과서를 사용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28년 박용만이 피살당한 뒤 활동이 침체되어, 1933년 마침내 단체를 해산하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