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판조선청년동맹 ()

근대사
단체
1927년에 일본 대판 지역의 청년운동단체.
이칭
이칭
대판고려무산청년회
정의
1927년에 일본 대판 지역의 청년운동단체.
내용

전신은 대판(大阪)고려무산청년회이다. 이 단체는 1926년 7월 1일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는 집행위원장 강철(姜哲), 김순선(金蕣鮮), 김일관(金一觀), 김연복(金演福), 김종오(金鍾五), 김영식(金英植), 박갑룡(朴甲龍), 권택(權澤), 권영하(權英夏), 이학재(李學宰), 이적진(李赤震), 이강호(李康鎬)(이상 위원) 등 임원을 선임했다.

이 단체는 1927년에 조선공산당 세력이 들어옴에 따라 대판조선청년동맹으로 명칭을 개편하고 집행부도 바뀌었다. 1927년 10월 16일 대판노동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대판고려무산청년회 제2회 정기대회에서 고려무산청년회를 해체하고 창립하기로 결정했다.

창립대회는 준비위원 위경영(魏京永)의 사회로 진행되어 임원을 선출하고(위원장 위경영), 위원 김우섭(金宇燮), 신희종(愼熙宗), 김우(金宇), 심황파(沈荒波), 이강호(李康鎬), 주두구(朱斗九), 유택(柳澤), 김병국(金炳國), 김영수(金英洙), 배○삼(裵○三), 박영만(朴永萬), 김항(金抗), 김여제(金與濟), 김흥찬(金興燦), 윤동명(尹東明)) 14개항의 강령과 8개항의 건의안을 채택했다.

채택한 결의안과 건의안을 통해 대판조선청년동맹은 ‘전민족적 단일당 수립’을 위해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로 하고, 아울러 신간회와 대립적 성격의 단체를 박멸하기로 하였다.

기능과 역할

대판을 비롯한 경도(京都), 동경조선청년동맹은 1927년 11월 국내의 조선청년동맹에 가맹해 지부로서 활동했다. 이 단체 활동 내용의 대부분은 반일반제운동으로서 대중단체인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대판연합회와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결성 직후 최초의 활동은 재만동포구축반대운동이다.

1927년 5월부터 중국에서 재만동포에 대한 탄압과 구축사태가 시작된 이후 국내 운동세력의 규탄운동으로 완화되었다. 그러나 재만한인에 대한 탄압이나 구축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대판조선청년동맹 긴급집행위원회(1927년 12월 13일)는 재만동포축출문제에 대해 협의한 후 ① 만주주재동포사건에 대해 대판 각 노동단체와 연합해 공동위원회를 열고 긴급구제책을 강구할 것 ② 신년을 기해 1월 1일과 2일에 덴노지(天王寺) 공회당에서 대판 각 단체와 연합해 조선노동자위안회를 개최할 것 등 3항을 결의했다. 이를 위한 실행위원은 위경영, 김흥찬, 김우섭의 3명이 결정되었다.

1928년 2월 16일에는 신간회 대판지회, 대판조선노동조합과 공동 주최로 덴노지 공회당에서 재대판조선인대회를 개최했다. 수천 명의 청중이 참여해 300명 경관의 경계 아래 열린 이 대회에서는 다음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즉 ① 조선노농청년총동맹집회금지에 관한 건 ② 신간회전국대회금지에 관한 건 ③ 재만동포옹호동맹을 적극적 지지에 관한 건 ④ 재일본조선동포의 거주권 확립에 관한 건 ⑤ 노동농민당 적극적 지지에 관한 건 ⑥ 금릉학원폐교에 대해 절대반대에 관한 건(조선인교육의 자유를 승인할 것) 등 이었다.

이외에 ⑦ 민족적 박해에 항쟁할 것 ⑧ 조선인을 압제하는 모든 악법을 철폐할 것 ⑨ 조선공산당 유죄판결을 반대하자 ⑩ 척식성 신설계획을 반대하자 ⑪ 조선총독폭압정치를 매장하자 등을 결의문으로 채택했다. 이 대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연사 30여명이 검속되었는데, 이들은 경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피검속자동맹을 조직하여 경찰당국의 무리한 압박을 규탄했다.

변천

1925년 1월 동경조선청년동맹의 전신인 동경조선무산청년동맹회가 결성된 이후 동경, 경도, 대판 등 일본 지역에 조직된 청년동맹조직은 1926년 이후 통일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28년에는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단체는 동경조선청년동맹, 경도조선청년동맹의 구성원과 함께 1928년 2월 2일 대판 소재 대판청년동맹회관에 모여 재일본조선청년동맹 결성을 위한 삼청년동맹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출석위원은 인정식(동경), 위경영, 김우섭, 윤동명(이상 대판), 김정두(金正斗), 조재홍(趙在鴻)(이상 경도)이다. 이 회의에서는 3월 1일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을 창립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재일본조선청년동맹 결성대회는 1928년 3월 21일에 대판 덴노지공회당에서 열려 행동강령 20개항이 채택되고, 신간회 지지 등 13개 안건이 논의되었다. 1928년 결성대회가 개최된 이후 4월 20일부터 이 단체는 재일본조선청년동맹 대판지부로 활동하게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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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인운동연구』(김인덕, 국학자료원, 1996)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박경식 편, 삼일서방, 1975)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동경조선인제단체역방기(東京朝鮮人諸團體歷訪記)」(박상희, 『조선사상통신(朝鮮思想通信)』, 1927.11.)
「在留朝鮮人ノ運動狀況」(內務省 警務局)
「大正15年ニ於ケル在留朝鮮人ノ狀況」(內務省 警務局)
「總本部の反對にあひ創立大會が有耶無耶」(『日本勞働通信』44호, 1928.3.24., 早稻田大學 MF 資料)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집필자
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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