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관(朴寅寬)·박승명(朴承明) 등이 평양의 신양리신학교(新陽里神學校)에서 기독교인을 규합하여 1919년 9월에 결성하였다.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함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회장 박인관, 총무 박승명, 평의원 임영석(林英奭)·고진한(高鎭翰)·황보 덕삼(皇甫德三)·이치수(李致洙), 회계 박치록(朴致祿), 서기 전흥건(全興鍵)이었다.
본부를 평양에 두고 각 군에는 군회(郡會)를, 각 면에는 향촌회(鄕村會)를 두어 조직을 확대하였으며, 회원으로부터 회비 3원씩을 받아 군자금으로 사용하였다. 또, 기관지로 『대한민보(大韓民報)』를 발행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