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직후 서일(徐一)·계화(桂和)·채오(蔡五) 등이 중광단(重光團)의 토대 위에 적극적인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동북만주의 대종교도(大倧敎徒)를 규합하여 조직하였다.
서일을 단장으로 만주 각지에 5개 분단과 70여개 지단을 설치하였다. 7월 항일독립투쟁을 위하여 국내 동포의 일치분발을 촉구하는 창의격문(倡義檄文)을 배포하였다. 그리고 군정회(軍政會)를 조직하여 군사의 모집과 훈련에 주력하였다.
10월군정부(軍政府)로 확대, 개편하여 김좌진(金佐鎭)이 합세하였으며, 연해주로부터 다량의 무기를 구입함으로써 전력을 강화하였다. 이해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시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편되었다.
이 단체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하여 직접적인 무장항일투쟁을 하기는 어려웠으나, 기관지 『일민보(一民報)』·『신국보(新國報)』 등을 발간하여 항일독립투쟁의 필요성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북로군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