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5년(고종 22) 몽고의 장수 탕구(唐古)는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범하였는데, 1236년 남으로 내려와 남경(南京 : 지금의 서울)·평택(平澤)·아주(牙州 :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를 유린하고 그 해 12월 대흥성을 포위하였다.
몽고군이 수일 동안 성을 공격하자, 향리 또는 수령의 지휘를 받은 주민들이 성문을 열고 나가 일제히 공격하여 적을 크게 물리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이 대흥전투는 몽고 제3차침입 때 처인성(處仁城 : 지금의 경기도 용인)·개천(价川 : 지금의 평안북도 희천)·온수(溫水 :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죽주(竹州 : 지금의 경기도 안성)의 전투와 함께 승전을 거둔 전투의 하나였다.
특히, 이 전투가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다는 것은 지배층에 비하여 고려 국민들의 침략군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강력하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