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으로 그려진 채색필사본으로 크기는 세로 67㎝, 가로 92㎝이다.
「도성도」는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군사·경제상의 인문현상뿐만 아니라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조성된 도성의 지형적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보여준다.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는 부감(俯瞰)한 시점으로 봉우리를 사방으로 펼치듯이 배치한 묘산도(墓山圖)형식으로 그려졌으며 산의 묘사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산수화풍으로 표현했다.
도성의 중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개천(청계천)과 남쪽과 북쪽에서 모여드는 물길은 도성 주변의 산곡(山谷)과 이어져 있다. 도성 주변의 산세는 회화성이 강조되어 있는 반면에 도성 안 시가지는 주요 궁궐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호화하여 도형으로 묘사하였다. 지도 전면에 그려진 붉은색 도로는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를 구분하고 계천에는 장통교(長通橋), 수표교(水標橋), 하랑교(河浪橋), 효경교(孝經橋), 마전교(馬廛橋)의 교량명이 자세하여 당시 한양 도성의 시가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지도가 한양도성을 그린 다른 지도와 비교하여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산수화풍의 산세 표현이다. 목멱산(남산) 일대의 토산을 표현한 미점(米點)이나 피마준(披麻皴), 丁자형의 소나무 표현은 18세기 후반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화풍을 따른 정선 일파의 진경산수화법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쪽에 있는 목멱산을 화면 위쪽 중심에 두고, 북쪽에 있는 산경을 화면 아래쪽에 배치한 구도는 남면(南面)한 군주가 수도 한양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왕이 정사를 보는 곳에 걸리는 어람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묘 왼쪽에는 1787년(정조 11)에 청사가 마련된 장용영(壯勇營)이 표시되어 있고 1788년에 서부와 북부에 4개 방(坊)이 신설된 행정구역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아 이 지도는 1788년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도성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지도로, 현전하는 한양을 그린 지도 가운데 가장 회화성이 높은 대표작으로 인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