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788년경 한양 도성 일대를 산수화풍으로 그린 지도. 고지도.
서지적 사항
내용
도성의 중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개천(청계천)과 남쪽과 북쪽에서 모여드는 물길은 도성 주변의 산곡(山谷)과 이어져 있다. 도성 주변의 산세는 회화성이 강조되어 있는 반면에 도성 안 시가지는 주요 궁궐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호화하여 도형으로 묘사하였다. 지도 전면에 그려진 붉은색 도로는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를 구분하고 계천에는 장통교(長通橋), 수표교(水標橋), 하랑교(河浪橋), 효경교(孝經橋), 마전교(馬廛橋)의 교량명이 자세하여 당시 한양 도성의 시가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지도가 한양도성을 그린 다른 지도와 비교하여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산수화풍의 산세 표현이다. 목멱산(남산) 일대의 토산을 표현한 미점(米點)이나 피마준(披麻皴), 丁자형의 소나무 표현은 18세기 후반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화풍을 따른 정선 일파의 진경산수화법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쪽에 있는 목멱산을 화면 위쪽 중심에 두고, 북쪽에 있는 산경을 화면 아래쪽에 배치한 구도는 남면(南面)한 군주가 수도 한양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왕이 정사를 보는 곳에 걸리는 어람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묘 왼쪽에는 1787년(정조 11)에 청사가 마련된 장용영(壯勇營)이 표시되어 있고 1788년에 서부와 북부에 4개 방(坊)이 신설된 행정구역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아 이 지도는 1788년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이현군, 청어람미디어, 2009)
- 『한국의 옛 지도』(문화재청, 예맥, 2008)
- 「도성과 도회지도」(이태호·정은주, 『국토의 표상』, 동북아역사재단, 2012)
- 「고려, 조선초 국도풍수 연구」(장지연,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 「규장각 소장 「도성도」의 산세 표현」(김성희, 『한국고지도연구』2-1, 2010)
- 「서울에서 세계문명을 보다」(이기봉, 『고지도를 통해 본 서울지명연구』, 국립중앙도서관, 2010)
- 「서울의 고지도」(이상태, 『서울 지도』, 서울역사박물관, 2006)
- 「조선시대 서울의 옛 지도」(이찬·양보경, 『서울의 옛 지도』,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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