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지방에 있던 항일 독립운동 지사들은 고종의 인산일을 기해 서울에서 독립선언식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서울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거사할 수 있도록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독립선언 선포 소식은 3월 7일 밤이 되어서야 북간도에 알려졌다. 이에 용정 및 국자가(局子街)의 동지들은 비밀 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한 끝에 독립운동 전개를 위한 통일체로서 구춘선(具春先)을 회장으로 하는 조선독립기성총회[朝鮮獨立期成總會, 이칭: 대한독립기성총회(大韓獨立期成總會)]를 조직하고, 3월 13일 국외 동포들만이라도 한 곳에 모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하고 「독립선언포고문」을 작성하였다.
그날 독립선언 축하식 석상에서 대회장 김영학(金永學)이 낭독한 포고문의 요지는 우리 민족의 독립·자유·정의·인도를 선언하고, 우리는 4천년 역사를 가진 나라요 2천만의 신성한 민족인데 일제가 우리 나라 역사를 자취도 남지 않게 없애고 민족을 타파해 그 밑에서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던 중, 지금은 세상이 변해 인도·정의·자유의 세상이 되었으니, 우리 민족도 천명과 인심에 순응해 자유·평등의 길로 나아가자고 하였다.
또, 서울에서의 독립선언에 동조하며, 배타적 감정에 광분하지 말고, 일제는 우리들의 성의를 일찰해 묵인, 특허하라는 것이었다.
포고문의 특색은 비폭력주의를 선언한 것, ‘공약 3장’이 <3·1독립선언서>의 그것과 거의 같은 점, 대표자들의 명단이 없는 점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