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이 교수형을 받은 뒤 제3대 교주가 된 손병희(孫秉熙)는 1905년 12월에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고치고 천도교의 출현을 세상에 공포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월에 일본에서 귀국하여 조직을 근대적인 교단조직으로 정비하는 한편, 천도교인들의 교화사업을 위해서 새로운 체제의 교리서들을 많이 출판하였다.
그 중 양한묵(梁漢默)이 저술한 책이 바로 ≪동경연의≫였다. 양한묵은 일본에서 손병희 등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한 인물로, 천도교 초기에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특히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서는 천도교 경전인 ≪동경대전 東經大典≫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한 책인데, 당시 ≪동경대전≫을 읽는 하나의 기준이라 할만큼 중요시되었다.
그런데 본서에서 특징적인 점은 유독 철학이라는 말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한묵이 일본에서 보고 듣고 읽은 것이 당시 천도교의 교리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즉 양한묵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898년으로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하여 명치초기의 계몽사상가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였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서는 영국철학과 독일철학이 이미 소개되어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계몽주의 사조와 서양철학이 풍미하던 일본 지식계의 동향에 따라 양한묵도 자연스럽게 철학이라는 신조어와 그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철학에 대해 관심을 보인 양한묵은 천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본서에서 그는 최제우의 사상적 요지를 인내천(人乃天)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인내천의 원리를 철학화라는 방향에서 비교적 체계적으로 논증하려고 애썼다.
이것은 이후 1920년대 천도교청년당의 이론가였던 이돈화(李敦化)의 저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천도교의 교리는 양한묵이 본서에서 제시한 논리에 따라 체계화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