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5책. 목판본. 1736년(영조 12) 손자 사집(師緝)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성명(宋成明)의 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5에 시 734수, 잡체(雜體) 23수, 권6·7은 잠·송·명 각 1편, 찬 2편, 교서(敎書) 3편, 전(箋) 6편, 장 5편, 상량문 1편, 서(序) 5편, 기 9편, 제사(題辭) 9편, 발 4편, 제문 13편, 고문(告文) 3편, 권8∼10은 소 26편, 계사(啓辭) 20편, 행장 3편, 묘지명 5편, 묘갈명 1편, 묘지 3편, 묘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 가운데 특기할 것은 「기김화전사(記金化戰事)」·「기금단전사(記黔丹戰事)」·「기토산전사(記兎山戰事)」·「기영변전패사(記寧邊戰敗事)」 등이다. 병자호란 때 각지에서 전쟁 사건을 수집하여 전쟁의 결과를 밝히고 패전에 대한 원인을 분석한 것으로, 항전한 내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제이해룡천자서(題李海龍千字書)」는 당시 한호(韓濩)와 비견할만한 명필인 이해룡이 남긴 필적이 『천자문』 하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그 필치가 고금에 보기 드문 희귀한 것임을 입증하였다.
「진소회소(陳所懷疏)」는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올린 것으로, 연이은 국난과 기근에 허덕이는 민생을 보살펴서 국기를 튼튼히 해야 함을 건의하고, 북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적전에 대비할 것을 주장해 대비책을 진언한 것이다.
「진산성사무소(陳山城事務疏)」는 1636년(인조 14) 12월 남한산성에서 청군과 대치하면서 산성의 방비책과 난중의 신휼책, 난후의 포상책 등에 대해 소신을 진언한 것이다. 「응지소(應旨疏)」는 1637년 5월에 왕명으로 구언한 것에 대한 소로, 전쟁의 복구책과 연이은 삼남지방의 흉년으로 발생한 기민의 구제책을 건의하였다.
이밖에도 외교관계를 건의한 것으로 여진(女眞)과 교역을 도모하는 중강진(中江鎭)의 개시, 왜관(倭館)의 문제 등을 진언한 「사승지겸진소회소(辭承旨兼陳所懷疏)」와 유서·시문 등에 조예가 깊은 명찰상인(明察上人)의 「풍계두회(楓溪蠹會)」를 칭찬한 「풍계두회서」가 있고, 또한 병자호란의 전말을 기록한 「제병자록(題丙子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