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중좌평을 역임한 장수.
내용
이때 왜(倭)에서는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을 파견하여 임나(任那)를 재건하려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무렵 신라는 남서방의 경영에 주력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524년(법흥왕 11)에는 남경을 개척하였으며, 532년에는 금관가야를 복속하였다고 한다. 이는 신라가 지금의 창녕 및 김해지역을 정복하였음을 의미한다.
두 기록은 신라에 의한 금관가야 멸망과 그에 따른 백제와 왜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다. 한편 마로는 『일본서기』흠명왕(欽明王) 2년 4월조에 하부(下部) 중좌평(中佐平) 마로로 나타난다. 이는 529년의 일을 다시 언급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사이에 마로는 좌평으로 관위가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일본서기(日本書紀)』
- 『任那と日本』(金延鶴, 小學館, 東京, 1977)
- 『任那興亡史』(末松保和, 吉川弘文館, 東京, 195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