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해사(海史). 일명 공유(公有)·성호(性浩). 경기도 용인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같은 해 4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조직되었을 때, 집안현(輯安縣: 지금의 集安) 및 환인현(桓仁縣)의 총지단장(總支團長)이 되었다.
일제의 주구단체인 일민단(日民團)을 습격, 파괴하였으며 독립단 행정총관소(行政總管所)를 설치하였다. 1921년에는 독립군양성소를 설치하여 2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 국내에 파견 활동하게 하였다.
1922년 남만한족통일회의(南滿韓族統一會議)에 대한독립단 대표로 참가했으며, 1923년에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군수국장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 정의부(正義府)자치분과위원이 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만주국 수립 이후 상해로 피신 활동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