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학회 ()

단체
1906년 황해도 안악지방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애국 계몽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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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6년 황해도 안악지방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애국 계몽단체.
개설

최광옥(崔光玉)의 발의로 김용제(金庸濟)·최명식(崔明植)·임택권(林澤權)·김홍량(金鴻亮) 등이 중심이 되어 1906년 11월에 조직하였다.

그 목적은 국민들에게 국권회복운동의 장기전으로 신교육과 민지계발(民智啓發)을 도모하기 위해 ① 청소년들을 계몽하여 민족자립사상을 고취하고, ② 교육을 장려하여 많은 학교를 세우고 교사들을 양성하며, ③ 농사기술을 개량하고 공업을 장려하여 산업진흥을 도모하는 것에 두었다.

회장에 임택권, 부회장에 송종호(宋鍾昊), 재무에 김용제, 서기에 양성진(楊星鎭) 등으로 구성하였으며, 초기의 회원은 20여 명이었고 본부는 정명재(鄭明哉)의 집에 두었다.

기능과 역할

제1차 사업으로 출판과 서점 운영에 착수, 1907년 에 면학서포(勉學書鋪)를 설립하였다. 면학서포의 출판사업을 통해 황해도를 중심으로 해서 각 지방에 책을 공급하였으며, 판매 대금은 주로 면학회가 필요로 하는 책을 사는 데 사용하였다.

이러한 1차 사업에 성공하자, 2차 사업으로 김구(金九)가 책임자로 있는 양산학교(楊山學校)와 공동 주최로 사범강습회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 보급과 우수 교사 양성을 위해 1907년 여름, 안악읍 소천리 향청지(鄕廳趾)에서 제1회 하기사범강습회(第一回夏期師範講習會)를 개최하였다.

강습기간은 한 달이고 강사는 최광옥·이광수(李光洙:당시는 李寶鏡)·고정화(高貞和) 등이었는데, 인근 지역은 물론 멀리 경기도와 충청도 등에서도 보통학교 교사들과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모여들어 강습생의 수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강습회의 주제는 ‘무너져 가는 조국을 일으키려면 자녀를 교육시키라.’였으며, 교과목은 최광옥이 국어·생리학·물리학·식물학·경제원론을, 고정화가 한국사를, 이광수가 서양사를 담당하였다.

1908년 여름 제2회 하기사범강습회에는 3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몰렸으며, 강사진에 김낙영(金洛泳)·김두화(金斗和)·최재원(崔在源)·김낙희(金樂熙)·방신영(方信榮) 등이 보강되었다.

갑·을·병 3반으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김구는 청강생들에게 단발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전원이 상투를 자르기도 하였다.

1909년 여름에 열린 제3회 하기사범강습회는 더욱 성황을 이루어 700여 명의 수강생에게 장응진(張應震)·옥관빈(玉觀彬)이 애국 계몽강연을 하였으며, 강사진으로 처음 이시복(李始馥)·한필호(韓弼昊)·이상진(李相晉)·박도병(朴道秉) 등이 보강되었다.

이로써 처음 예정했던 3회의 강습회를 마치고 수료증을 수여하여, 연인원 1,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뜻있는 교육을 마치고 연고지로 돌아가 학교 설립 및 교사의 소임을 담당하였다.

면학회는 하기사범강습회와 더불어 3차사업으로 1907년 봄부터 춘계 연합 운동대회(春季聯合運動大會)를 개최하였다. 그 목적은 친목과 단결정신 고취, 강건한 신체 연마, 민족의식 함양 등에 두었으며, 황해도지방 여러 학교의 연합체전으로 주관하여, 양산학교에서 1907년과 1908년 봄에 걸쳐 2회의 연합 운동대회를 실시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운동경기만을 실시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강연을 함께 하였는데, 이를 구실로 한 일제의 방해로 제3회 운동대회는 개최되지 못하였다. 그 뒤 면학회는 1909년 해서교육총회(海西敎育總會)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계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면학회는 국권 상실을 전후한 시기에 교육 구국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애국지사들에 의해 결성된 민족단체로, 안악을 해서지방 신문화운동의 요람지로 만들어 수많은 인재 양성과 민족사상운동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백범일지』(김구, 서문당, 1973)
『안악군지』(안악군민회, 1976)
『최광옥략전과 유저문제』(최이권, 동아출판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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