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9년(신종 2) 2월 명주에서 명주의 백성이 들고 일어나 삼척과 울진 두 현(縣)을 함락하였다. 이 때 동경(東京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에서도백성이 들고일어나 명주의 백성과 합세하여 주군(州郡)을 약탈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낭장(郎將) 오응부(吳應夫), 차함합문지후(借銜閤門祗候) 송공작(宋公綽)을 명주도(溟州道)에, 장작소감(將作少監) 조통(趙通), 낭장 한지(韓祗)를 동경에 보내어 이를 초무(招撫)하게 하였다.
같은 해 3월 동경적의 괴수 김순(金順), 울진적의 괴수 금초(今草) 등이 와서 항복하니, 왕은 주식(酒食)과 의복을 주어 돌려보냈다.
무신정권이 성립된 뒤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났으며 명주의 민란이 일어났던 신종 초만 하더라도 개성의 사노(私奴) 만적(萬積)의 난, 진주리(晉州吏) 정방의(鄭方義)의 난 등 2, 3년간에 7, 8건의 민란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주식과 의복을 주어 돌려보냈다는 것으로 보아 이들을 무력으로 억누르기보다는 되도록 회유하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