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개성의 태조 옛 집에 세워진 진전(眞殿).
개설
내용
1899년에는 영희전을 옮기고 경운궁 신선원전의 어진을 옮기면서 신선원전의 1실에 태조 어진을 새로 봉안하였다. 당시 태조 어진은 1872년에 이모한 전주 경기전본 및 서울 영희전본과 1837년 이모한 준원전본이 있었다. 신선원전에는 당시 남은 것 중 가장 오래된 이모본인 준원전본을 새로 모사한 후 봉안하였다. 경운궁 선원전에 봉안이 완료된 지 다섯 달도 채 안 되었을 때 화재가 발생하여 7실의 어진이 모두 불타 버리자 바로 새로 선원전을 건립하고 7실 어진을 모두 다시 그렸는데, 1실의 태조 어진은 1838년 준원전본을 이모하였다. 이 때 목청전의 복구가 결정되면서 준원전본의 이모본을 목청전에도 봉안하였다. 1907년 제향 장소를 일제히 정리하는 칙령이 반포되었는데 영희전과 목청전, 장녕전, 화령전, 육상궁, 경우궁, 선희궁 평락전 등에 봉안된 어진을 창덕궁 내 선원전으로 옮기도록 한 내용이었다. 조선 초 이래 태조 진전으로 기능하던 목청전은 재건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역사적 역할을 다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
- 「19세기 진전 및 어진 봉안처 운영에 대한 연구」(김지영, 『장서각』 26, 2011)
- 「숙종·영조대 어진 도사와 봉안 처소 확대에 대한 고찰」(김지영, 『규장각』 27, 2004)
- 「조선왕조시대에 있어서의 진전의 발달」(조선미, 『고고미술』 165,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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