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한인들이 시작한 채소와 과일 중간도매상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든 합작회사이다.
1920년대 미국에 거주한 한인들은 당시 미국 경제 불황의 여파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에 따라 미주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예전처럼 활발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까지 한인들이 주로 해오던 고된 육체노동에 의한 수입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자영업과 같은 사업이나 여러 사람의 자금을 모은 합자회사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려는 실업운동이 대두되었다. 남가주농산조합은 그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회사 중 하나였다.
남가주농산조합 규정 제1장 제2조에는 “본 조합의 목적은 채소 실과의 판매 및 위탁 매매 등 영업으로 정함”으로 그 설립목적을 밝히고 있다.
미주한인사회는 1903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이루어진 노동이민에 기초하여 형성되었으며, 이때 하와이로 7,226명이 이주했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0시간씩 25일간 일하며 16달러를 받았다. 이민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하와이 지역에서 육체노동에 의하여 생활을 이어가다 1세대가 40대가 되는 시점부터는 미국 본토에서 자영업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 미국의 경기 불황으로 한인들의 경제활동이 매우 위축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독립운동에 대한 후원도 힘을 잃게 되었다. 이에 부강을 위한 실업운동이 대두되게 되었다.
『신한민보』1923년 2월 22일자 논설「합자사업이 곧 부강의 근원」에서, “지금이라도 미주 동포들이나 하와이 동포들이 합자사업이 곧 부강의 근원이 되는 줄로 다 각기 지각하고 … 적은 자본일지라도 합하여 상업에 착수하면 십 수 년 이후에는 오늘과 같이 절박한 생활문제를 해결하리로다.”라고 했다.
이에 로스엔젤레스에서 남가주농산조합이 설립되었다. 최초의 조합장은 송종익이었으며, 자본금 5천 달러를 기반으로 채소와 과일 중간도매상을 시작하였다.
1920년대는 한인사회의 경제적 위기와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실업운동이 한창인 때였다. 남가주농산조합은 개인들의 자금을 모은 합자사업에 대한 적극적 권유가 이어지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이 조합은 단순히 한인들의 개별적 번영만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 한인들의 마음을 모으고, 미약해진 미주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다시 끌어내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