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태조 이하 역대 왕들의 어진(초상화)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진전(眞殿).
개설
내용
1677년(숙종 3) 남별전을 3실로 중건하였으나 여전히 세조와 원종 어진만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1688년(숙종 14)에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을 서울로 가져와 모사한 후 남별전의 남은 칸에 봉안하였다. 1748년(영조 24) 영희전을 5실로 중건한 후 창덕궁 선원전에 있던 숙종 어진을 모사하여 영희전 제4실에 봉안하였다. 남은 한 칸은 영조 자신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한 것이었고, 영조 사후 경희궁 태녕전(泰寧殿)에 있던 어진 중 1744년 갑자년 면복본을 영희전 제5실에 봉안하였다.
영희전의 제향은 조선 전기 문소전 제향과 같이 중사(中祀)에 속하였다. 매해 정월 초하루,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이 공식 제향일이었고, 종묘 제향보다 전통적인 제향 방식인 속절 제향의 형식으로 제사 지냈다. 숙종은 3년에 한 차례 영희전에 친림하여 작헌례를 올리도록 정식화하였다. 영조는 영희전 작헌례에 재계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6차례 제향 중 한 번의 제향은 왕이 친향하는 규정도 마련하였다. 이처럼 숙종대에서 영조·정조대 사이에 영희전은 태조와 세조, 원종, 숙종, 영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진전 제향을 올리는 장소, 종묘에 버금가며 종묘보다 친근한 방식으로 역대 왕들을 추모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변천
영희전은 철종대에 이르러 다시 변화를 겪었다. 안동 김씨 세도 하에서 왕위에 오른 철종은 1857년 순원왕후 국장 후 순조의 묘호를 순종에서 순조로 바꾸고, 영희전을 중건한 후 순조 어진을 제6실에 봉안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 영희전을 경모궁 터로 이전하였다. 영희전이 자리잡고 있던 지역은 1885년 한성조약 이후 일본인들의 거주지와 상권이 확대되고 있었다. 1898년에는 명동성당이 영희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건립되면서 국가적 제향 장소로서의 위상에 타격을 입었다. 때마침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장종(莊宗)으로 추숭하면서 사당인 경모궁이 비게 되자 이 자리에 영희전을 새로 짓고 각 실의 어진을 옮겨 봉안하였다. 경모궁 망묘루에 있던 5대의 어진은 선희궁 평락정(平樂亭)으로 옮겼다. 같은 시기 창덕궁의 선원전도 고종 황제의 새 궁궐인 경운궁으로 옮겼다. 이 신선원전의 1실에는 영흥 준원전의 태조 어진을 이모하여 봉안하였다. 시어(時御) 궁궐이 바뀔 때를 대비하여 경복궁과 창덕궁의 선원전도 1실을 늘려 건립하였다. 이후 화재로 경운궁 신선원전의 7대 어진이 모두 불타 버렸지만, 바로 복구하였다.
7실의 경운궁 신선원전과 6실의 경모궁 자리 영희전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였다. 1907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순종은 향사이정에 관한 칙령을 반포하였다. 서울의 영희전, 개성 목청전, 수원 화령전, 육상궁 냉천정, 선희궁 평락정, 경우궁 성일헌에 봉안되던 역대 왕들의 영정은 모두 창덕궁의 선원전으로 옮겨졌고, 어진을 봉안하던 장소들은 모두 국유지로 귀속되어 역사적 역할을 마쳤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 『영희전지(永禧殿志)』
- 『남전증건도감의궤(南殿增建都監儀軌)』
-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
- 『진전중건도감의궤(眞殿重建都監儀軌)』
- 「19세기 진전 및 어진 봉안처 운영에 대한 연구」(김지영, 『장서각』 26, 2011)
- 「숙종·영조대 어진 도사와 봉안 처소 확대에 대한 고찰」(김지영, 『규장각』 27, 2004)
- 「조선왕조시대에 있어서의 진전의 발달」(조선미, 『고고미술』 165,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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