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김석겸의 후손 김치황(金致晃)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남효구(南孝九)·장병철(蔣柄哲) 등의 서문과 심동택(沈東澤)의 문집영간서(文集營刊序)가 있고, 권말에 후손 김익현(金翼鉉)과 김치황의 발문이 있다.
8권 2책. 석인본.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364수, 권3에 소(疏) 1편, 서(書) 13편, 권4∼6에 잡저 13편, 서(序) 5편, 기(記) 10편, 발문 3편, 명(銘) 3편, 찬(贊) 4편, 권7에 축문 12편, 제문 3편, 묘지 1편, 권8에 부록으로 제문 6편, 창수록(唱酬錄) 2편, 기증시 44수, 서(序) 1편, 가장(家狀)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교훈적인 내용과 농민의 빈한한 생활을 묘사한 것이 많아 주목된다. 특히 「죽현(竹峴)」에서는 “죽현이라 불리는 고개가 있다. 대나무는 없는데 어찌 죽(竹)이라 하였는가? 세상에는 원래 이와 같은 일이 많으니 나는 지금 나의 눈을 귀중히 여긴다.”며 실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선험적 사고를 경계하였다.
「민견군기빈무상제구점(悶見群飢貧無相濟口占)」에서는 빈민의 참상과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빈녀(貧女)」에서는 가난한 여자의 길쌈하는 광경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은 빈민을 소재로 한 시들은 문학적으로도 주목된다. 그밖에 기행시로 「생담팔경(生潭八景)」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남천청원소(南川請院疏)」는 의흥(義興)지방에 서원의 설치를 요구하는 상소이다. 당시 서원과 사우의 설립을 통해 향촌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던 지방 사족들의 동향을 살필 수 있다.
잡저에는 『주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주례고의(周禮攷疑)」, 조선시대 사회·경제적으로 영향이 컸던 역사적 사실을 정리한 「성조삼백년후경향시사(聖朝三百年後京鄕時事)」 등의 글이 있다. 그밖에도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