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책. 영인본. 1973년 후손 필주(弼柱)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용현(權龍鉉)의 서문, 권말에 후손 창주(昌柱)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2수, 소(疏) 4편, 장(狀) 1편, 서(書) 3편, 격문 8편, 권2∼4는 부록으로 권2에 절록(節錄) 5편, 거의실적(擧義實蹟), 척록(摭錄), 통문 7편, 권3에 가장(家狀) 1편, 행장 3편, 신도비명 · 묘지명 · 묘표 각 1편, 권4에는 기(記) 3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선조에게 보낸 것들이다. 「주둔함양시상소(駐屯咸陽時上疏)」는 전라 좌의병장(全羅左義兵將)으로서 200여 명의 의병을 일으킨 뒤 여러 차례 전투를 겪으며, 경상우도감사 김성일(金誠一)의 급고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함양에 주둔하게 된 경위를 적은 것이다. 이어 「재소(再疏)」에서는 왜군을 방어할 수 있는 방도로 군량 · 기계 · 전사(戰士)의 확보를 주장하였다.
「거가환경시상소(車駕還京時上疏)」와 「재소」에서는 그에게 내려진 표창을 사양하며, 오히려 부장(副將) 장윤(張潤)의 각종 전투에서의 공적과 진주성 전투에서 장윤을 비롯한 그의 의병 부대 300명이 모두 전사한 것을 들어 모든 공로를 장윤에게 돌리고 있다.
「보체찰사장(報體察使狀)」은 체찰사에게 보낸 장계로, 성주 · 개령 · 선산 등지의 전투를 상세히 서술, 장윤의 공로를 칭찬하고 포상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서(書) 3편은 모두 「답경상우순찰사(答慶尙右巡察使)」로 김성일에게 보낸 서간이다.
격문은 6개의 격문과 전령(傳令) 1편, 통문(通文) 1편으로 되어 있다. 「거의시격읍문(擧義時檄邑文)」은 박광전(朴光前) · 정사제(鄭思悌) · 김여중(金汝重) · 문위세(文緯世) · 김익복(金益福)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며 쓴 격문으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에서 전사한 데 대한 의분을 담고 있다.
그밖에 「격장흥장보문(檄長興章甫文)」 · 「격본도제의병장(檄本道諸義兵將)」 등이 있다. 권2의 통문은 후대의 것이지만 영 · 정조 연간 사우(祠宇)의 건립과 관련해 향촌 세력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