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부터 창궐한 왜구를 토벌,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군선을 증강하여 왜구를 무찌르고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동안 증강된 군선의 종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대선(大船)·중대선(中大船)·중선(中船)·병선(兵船)·쾌선(快船)·맹선(猛船)·중맹선(中猛船)·별선(別船)·무군선·선(船)·추왜별맹선(追倭別猛船)·왜별선(倭別船)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무군선은 경기의 각 포에 47척, 충청도에 10척 등 57척이 있는데, 그것은 1420년(세종 1) 여름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이종무(李從茂)가 대마도를 원정한 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공선(空船)을 둔 데서부터 유래되었다.
이때의 무군선은 임시로 둔 데 지나지 않았으나, 세조 때 맹선을 제도화하면서 무군선을 대량으로 두었다. 『경국대전』 제도병선조(諸道兵船條)에 나타나 있는 737척의 대맹선·중맹선·소맹선 중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249척이 무군선이다.
그 무군선의 대부분은 무군소맹선(無軍小猛船)이고 무군대맹선은 1척, 무군중맹선은 3척뿐이다. 세조 때 모든 군선을 맹선으로 규격화하며 그렇게 많은 선척(船隻)을 예비선인 무군선으로 만든 것은 왜구도 완전히 진압된 뒤로 무리하게 늘어난 수군의 군비를 축소하고 군선의 평화적 이용을 도모한 조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