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基). 1987년 전라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장승의 본래 위치는 현재와는 달리 옛날 무안읍 성의 남문 밖 후청(帿廳)마을 입구에 있었으며, 2쌍 4기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1쌍은 서울 중구 정동 미국대사관 관저에 옮겨져 있다.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은 지난 1984년이며 당시는 무안군청 입구에 있었다. 이들 장승은 마을을 지키고, 잡귀 · 잡신을 막아주며 마을사람들의 소원성취를 들어주는 수호신적인 기능과 기원의 대상물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이와 더불어 마을장승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곳이 본래 무안읍성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성과 관련된 장승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질은 입자가 거칠고 결락(缺落 : 이지러져 멸어짐.)이 심한 퇴적암 계통의 붉은 반점이 군데군데 박힌 돌을 이용하였는데, 전면을 거칠게 다듬질하여 얼굴 부위만을 형상화하였다.
몸체에 ‘東方大將軍(동방대장군)’ · ‘西方大將軍(서방대장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표현수법에 있어 두 장승이 서로 비슷하지만 동방대장군은 남성적이고 서방대장군은 여성적인 인상을 느끼게 한다.
크기는 동방대장군이 높이 199cm, 너비 37cm, 두께 33cm이고, 서방대장군은 높이 177cm, 너비 37cm, 두께 29cm이다. 이곳 장승이 마을장승이었음은 전해오는 이야기로도 알 수 있다. 후청 마을에서는 이들 장승에 대하여 매년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장승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날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내면서 장승에도 아울러 제의를 행하여 왔는데, 이는 마을제사에서 장승이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 마을의 주신(主神)을 중심으로 한 보조적인 구실을 하였던 하위신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장승의 제작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여주는 것은 바로 장승제 및 마을제사와 관련하여 1741년(영조 17)에 조직된 향약계가 전해오고 있다.
이 기록은 바로 향약계와 당산제 · 장승제가 상호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1987년 전라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지만, 원래 4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서울의 미국대사관 관저에 있는 나머지 2기도 본래의 위치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