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이 하얼빈(哈爾濱)에 도착하였을 때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서 한국독립을 지원할 것을 요청하였던 남자현은 일제가 국제연맹이 반대하는 괴뢰 만주국 성립을 강행하자 일제를 응징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 2월 동지들과 협의한 뒤 3월 1일 만주국 건국기념일을 기하여 주만주국 일본대사인 무토를 암살하기로 하고 무기구입 및 동지들과 연락을 취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2월 27일 중국 걸인노파로 변장한 뒤 폭탄을 가지고 하얼빈 교외 정양가(正陽街)를 지나다가 일본경찰의 검문으로 발각, 붙잡힘으로써 이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62세의 남자현은 일제의 악독한 고문으로 사경에 이르렀으며, 병보석 수일 후 고문의 여독으로 순국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