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 역사에서 보리달마(菩提達磨, 주1로부터 연원하는 조사선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깨달은 존재라는 사상에 근거하여 형성된 선풍으로 인간의 본래 자성은 청정하고 순수하다는 이념을 철저하게 긍정한 가풍이었다. 그 조사선풍이 주2의 형성으로 말미암아 가장 번성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당 및 오대에 순수한 가풍으로 전개되었던 조사선풍은 시대가 내려감에 따라 변하였는데, 송대에는 인간의 본래성을 지나치게 긍정하고 집착한 나머지 점차 주3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폐풍의 면모에 대하여 점차 반성하면서 새로운 선풍을 추구하기 시작한 선종계에서 12세기부터 당나라 시대의 순수한 조사선풍을 회복시키려는 자각의 운동이 싹텄다. 그러한 분위기가 점차 성숙하게 되자, 인간의 본래청정한 순수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본래청정한 인간의 자성을 긍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입장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고 자각한 주4 계통에서 주창한 선풍이 간화선 수행법이었고, 본래성은 어떤 경우에도 물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깨달은 주5 계통에서 진헐청료(眞歇淸了, 10881151) 및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크게 주창한 선풍이 묵조선 수행법이었다. 간화선과 묵조선은 모두 당나라 시대의 순수한 조사선풍을 회복하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수행방법의 차이로 출현하였다.
묵조선의 수행에서는 인간의 본래청정한 면모를 자각하는 본증자각(本證自覺)을 요구하였다. 그 방법이 바로 철저한 좌선 중심의 수행인 지관타좌(只管打坐)였다. 본래부터 완전한 자성 내지 불성은 아무런 장애가 없이 깨달음 곧 공안의 모습으로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주6을 주장하였다. 이로써 올바른 좌선을 통해서 본래성불을 자각하는 사람은 그대로 몸과 마음의 번뇌를 벗어나 있다는 몸과 마음의 초월 소위 주7을 내세웠다.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종고의 주8에서는 묵조선에 대한 오해로부터 세 가지 점을 비판하였다. 특정의 화두를 참구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묵조선에서 본래 화두를 참구하는 대신에 모든 공안에 대하여 사유한다는 점에 해당한다. 좌선의 자세에 집착한다는 비판은 묵조선에서 좌선을 중시하는 지관타좌라는 점에 해당한다.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묵조선에서는 본래 깨달아 있다는 전제로부터 수행하기 때문에 새롭게 깨달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해당한다. 이처럼 간화선 측에서 비판한 내용은 오히려 묵조선의 특징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