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사(元興寺) 조영에 참여하였다. 『일본서기』 및 『원흥사가람연기(元興寺伽藍緣起)』에 인용된 「원흥사노반명」에서는 그를 각각 사공(寺工)·사사(寺師)라 하여 사찰의 조영을 맡은 기술자임을 알 수 있다.
588년(위덕왕 35) 사공 태량미태(太良未太), 노반박사(露盤博士) 백매순(白昧淳), 와박사(瓦博士) 마나문노(麻奈文奴)·능귀문(倰貴文), 화공(畫工) 백가(白加) 등과 함께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그 해 비조의봉조(飛鳥衣縫造) 조수엽(祖樹葉)의 집을 허물고 호코사(法興寺, 元興寺)를 짓기 시작하였다. 일본 최초의 사찰인 호코사를 창건하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