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대전지방법원장, 전주지방법원장, 혁명특별재판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청진중화어학원(淸津中華語學院)을 졸업한 다음 만주국(滿洲國) 변호사로서 3년간 목단강시(牧丹江市)에서 개업하였고, 1932년 청진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1934년 웅기성결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1946년 대구소년심리원장이 되었으며,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춘천지방법원장·청주지방법원장·대전지방법원장·전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하고, 1959년대전에서 변호사개업을 하였다.
춘천농과대학·청주대학 및 충남대학교의 강사로서 법학교육에도 힘썼으며, 1960년 4·19 후 혁명특별재판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법조인으로 존경받았으며, 불의에 굴하지 않은 법조인의 귀감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법관사』(대법원, 1975)
- 『한국변호사사』(대한변호사협회, 1979)
- 『한국법조인대관』(법률신문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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