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신재(愼齋). 서울 출신.
1913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이듬해 사범과를 졸업하고 1918년까지 대전공립보통학교 훈도를 지냈다. 1921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지방법원 서기로 재직중 1923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변호사개업을 하다가 1927년청진으로 옮겨 개업하였다.
1931년청진중화어학원(淸津中華語學院)을 졸업한 다음 만주국(滿洲國) 변호사로서 3년간 목단강시(牧丹江市)에서 개업하였고, 1932년 청진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1934년 웅기성결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1946년 대구소년심리원장이 되었으며,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춘천지방법원장·청주지방법원장·대전지방법원장·전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하고, 1959년대전에서 변호사개업을 하였다.
춘천농과대학·청주대학 및 충남대학교의 강사로서 법학교육에도 힘썼으며, 1960년 4·19 후 혁명특별재판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법조인으로 존경받았으며, 불의에 굴하지 않은 법조인의 귀감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