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문맹자 계몽운동은 1920년대 후반 조선일보사의 문자보급운동(文字普及運動)을 시초로, 1931년 동아일보사의 브나로드운동(vnarod運動) 등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우리 나라 2천만 인구 가운데 문맹자는 80%에 달하였다. 동아일보사는 제1회 브나로드운동과 함께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를 중심으로 한글강습회를 개최하였다.
이 강습회에 참가한 대표적인 학자들은 이윤재(李允宰)·김윤경(金允經)·이병기(李秉岐)·최현배(崔鉉培)·이희승(李熙昇)·장지영(張志暎)·이만규(李萬珪) 등이었다.
이들은 1931년 7월 25일부터 8월 8일까지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한글강습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문맹타파가」라는 노래로 글자를 풀어서 한글을 쉽게 깨우칠 수 있도록 하였는데,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 가지고 말 못하면 벙어리라지
눈 뜨고도 못 보는 글의 소경은
소경에다 귀머거리 또 벙어리라
귀머거리 이 아니고 그 무엇이뇨
말하듯이 써낸 글을 쓰도 못하니
벙어리가 이 아니고 그 무엇이뇨
창앳등 ㄴ은 절로 아리라
자 들고 세로 재면 ㅣ자가 되고
홍두깨 가로 놓으면 ㅡ자가 되네
이런 식으로 글의 깨우침을 강조함과 동시에 기본적인 글자를 노래로 풀어 쉽게 깨우치도록 하였다. 이 「문맹타파가」는 1935년 초까지 문자보급운동과 함께 활발히 전파되다가, 1935년 일제 총독부의 문자보급운동 중지령으로 언론기관의 운동이 중단되면서 자연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