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응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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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문서를 작성하던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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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문서를 작성하던 기관.
내용

승문원(承文院)의 전신이다. 고려 때 처음 문서감진색(文書監進色)이라는 비상설기구를 설치하고 별감(別監)을 두어 외교문서를 담당하게 하였다가, 뒤에 문서응봉사로 개칭하고 사(使)·부사·판관 등의 관원을 두었으나 모두 다른 부서 관직자들로 겸직시켰다.

이 제도는 조선 건국 뒤에도 그대로 존치되어오다가 1408년 (태종 8) 기구를 확장하여 지사(知事)·첨지사(僉知事)·검토관(檢討官)·교리관(校理官)·수찬관(修撰官)·서기(書記) 및 수습관원인 권지(權知) 등을 두어 외교문서작성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관원들은 모두 전임직이 아닌 타관원들의 겸직이었다. 업무의 성격 때문에 현직관원·퇴직관원을 불문하고 외교문서에 능숙한 자들을 골라 임명하였다.

1411년 문서응봉사를 승문원으로 개칭하고 그 관원들도 정규직화하여, 판사·지사·첨지사·교리·부교리·정자(正字)·부정자(副正字)의 체제로 정비하였다. 이들은 다시 1465년(세조 11)『경국대전』의 승문원 관제로 재편되었다. →승문원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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