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13m의 산정부를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 에워싼 석축산성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남산석성(南山石城)이라 하여 둘레가 160보(步)이고, 성안에 봉수대가 있다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남산고성(南山古城)의 둘레가 430척(尺)이라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이 성을 비류(沸流)의 옛 성이며, 성안에 비류정(沸流井)이란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인천읍지』에서는 이 성을 미추홀(彌鄒忽) 고성이라 하고, 임진왜란 때 인천부사 김민선(金敏善)이 옛 성을 수축하여 지키면서 여러 차례 왜적을 무찌르다가 병으로 죽자, 김찬선(金纘善)이 이어받아 끝까지 성을 지켰으며, 동문 밖 100여 보 되는 곳에 왜군이 쌓은 성터가 있다고 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577m이고, 이 가운데 현존하는 부분은 339m나 된다. 이 중 육안으로 성벽을 알 수 있는 부분은 220m인데, 성벽의 높이는 약 1.5m∼4m로 남았다. 성벽은 장방형의 면을 가지도록 수평고임쌓기로 정연하게 축조하였다. 성벽의 외측 기단 아래에서는 2∼3단을 안쪽 방향으로 10∼15㎝씩 들여쌓거나, 경사가 완만한 기초부의 보강축조가 있어 견고하다.
성에는 동문과 서문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동쪽에 작은 수구(水口)가 남아 있다. 성안에는 동문에서 서북쪽 150m 지점에 우물이 있었으나 매몰되었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없어졌다.
정상의 동측 아래로 김민선을 모신 사당인 안관당(安官堂)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성안에서는 삼국시대 이래의 토기편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작은 문학산성에서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것은 역사상 특이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