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물방아[水碓]’로, 『임원경제지』에는 ‘물방아[槽碓]’로 표기되었다. 곳에 따라 ‘벼락방애’(전라남도 보성)또는 ‘통방아’(강원도 도계)라고도 부른다. 물방아는 물레방아보다 수량이 적은 곳에 설치되었다.
굵고 긴 통나무의 한 끝을 구유(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큰 그릇)처럼 길게 파서 물이 담기도록 하고 다른 끝에는 구멍을 뚫고 공이를 박았다. 또, 공이가 오르내릴 때 쌀개를 고정시키는 두 기둥에 몸채가 닿지 않도록 가운데를 양쪽에서 발라 낸다. 확이 박힌 부분에는 긴 작대기 서너 개를 원뿔모양으로 벌려 세우고 위를 덮어 방앗간으로 삼는다.
수로(水路)에서 쏟아지는 물이 물받이에 가득차면 물의 무게 때문에 물받이 쪽이 주저앉고 공이 쪽은 들려 올라간다. 이 때 물받이에 담겼던 물이 쏟아지면서 공이가 떨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곡물을 찧게 된다. 큰 통나무가 귀한 곳에서는 나무궤짝을 짜서 물받이에 대신하기도 한다. 주로 벼 · 보리 · 기장 · 조 · 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찧는데, 방앗삯으로는 보통 겉곡 한 가마에 알곡 두 되를 낸다.
기장과 조 등은 하루 한 가마를 찧으며, 물이 좋은 때는 벼 두 가마를 찧는다. 그러나 성능이 기계방아만은 못해서 서속(黍粟:기장과 조) 한 가마에 알곡은 여섯 말쯤 나온다.
속도가 매우 느려서(보통 때는 3분에 7회 찧음) 한 나절에 한 번쯤 곡식을 바꾸어 넣을 때 외에는 지켜 있을 필요가 없다. 공이는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목재를 쓰며, 끝에는 둥근 쇠통을 끼우기도 한다.
겨울에는 수량(水量)이 적어서 얼어붙기 때문에 물방아를 사용할 수 없다. 산짐승의 피해가 많은 산간마을에서는 밤이면 공이 쪽에 양철통을 매달아서 큰소리가 나게 한다. 특히, 감자밭으로 모여드는 멧돼지는 이렇게 하여 쫓는 일이 많다. 전라남도지방에서 이를 ‘벼락방애’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방아에도 강태공(姜太公)의 외기둥 사주(四柱)라고 하여 ‘경신세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조작(庚申歲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造作)’이라고 쓴다. 충청북도 음성에서는 방아를 앉힌 날 저녁에 여주인이 고사를 올리며 다음과 같이 축원한다.
‘토지지신(土地之神)님, 목신(木神)님, 아무개 집 대주(大主) ○○생(生)이 ○○년(年) ○○월(月) ○날 방아를 만들어 걸었읍니다. 오늘 이 정성 받으시고 이 집에 재수복덕 내려 주시고 아무 후환 없이 하여 주옵소서. 흥겹게 받으시고 기꺼이 받으시고 소원성취 주사이다.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