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무사, 궁내부협판, 비서감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여흥(驪興)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1년(고종 8)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민영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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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무사, 궁내부협판, 비서감경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서울 출신. 민영주(閔泳柱)의 아들로 민영수(閔泳秀)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1년(고종 28)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9년 한성부판윤 겸 한성부재판소수반판사(漢城府裁判所首班判事)를 거쳐 농상공부협판으로 있던 중 생부 민영주가 의정부의정 윤용선(尹容善)의 탄핵을 받게 되자 이를 변호하다가 면직되었으나, 곧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의 반포와 더불어 특별히 사면되어 농상공부협판에 재임명되었다.

1900년 법규교정소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으로 있다가 내부협판이 되어 시강원첨사와 서북철도국감독을 겸임하였다. 1901년 법부대신임시서리 조병식(趙秉式)의 탄핵으로 15년 유배형을 받고 백령도로 귀양을 갔으나 곧 방면되었고, 이듬해 2월 특별히 징계를 면하게 되었다.

그뒤 궁내부특진관·비서원경·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904년 농상공부협판과 내장원감독에 임명되었다. 1905년 평리원재판장과 경무사, 그리고 궁내부협판을 역임하였다. 1906년 궁내부협판으로서 궁내부대신사무의 서리와 시강원첨사 및 제도국의정관(制度局議定官)을 차례로 겸임하였다. 1907년 비서감경(祕書監卿)과 시강원첨사를 거쳐 궁내부특진관 겸 의효전제조(懿孝殿提調)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 - 『일성록(日省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순종실록(純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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