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서울 출신. 영환(泳煥)의 친손(親孫)이다. 1949년 고려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한 뒤 도미하여 매크리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1956년부터 1970년까지 고려대학교 강단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이 기간 동안 30대의 약관으로 제4차 한일회담 전문위원으로 활약한 바 있고, 경향신문사와 중앙일보사의 논설위원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질책하는 참신한 필봉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1966∼1970년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일본문제연구실장을 맡으면서 동북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1973년 학계를 떠나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으면서부터 정치계에 발을 내디뎠다.
그뒤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의 사회문화센터 사무국장직을 맡아 일하였다.
1973년의 제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서울 성동구에 출마하여 최다수득표로서 등원하였고 국회의 외무분과위원장직을 맡았다. 이때 국제정세감각을 인정받아, 1979년 주프랑스대사 겸 주모로코대사로 임명되었고, 1982년 외무부 본부대사를 맡았다. 그 뒤 정치와 행정일선에서 물러나 1983년부터 인천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