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돈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때, 주차영국벨기에공사, 장례원소경, 경효전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여흥(驪興)
  • 사망 연도191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3년(철종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맹수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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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주차영국벨기에공사, 장례원소경, 경효전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민건호(閔建鎬)의 아들로, 민석호(閔奭鎬)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6년(고종 2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올랐다. 1887년 4월 한림(翰林)을 거쳐 그해 6월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가 되었으며, 이듬해 시강원사서가 되었다.

1891년 성균관대사성의 직에 올랐고, 1893년 동래부윤이 되었으며, 1896년 동래감리 겸 동래부윤이 되었다. 1897년 비서원승을 거쳐 1898년 중추원1등의관에 임명되었으며, 칙임관4등에 올랐다. 1898년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이어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에 임명되었으며 칙임관3등에 서임되었다. 1901년 3월 주차미국특명전권공사를 거쳐 같은해 4월 주차영국벨기에공사로 임명되었다. 1904년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이 되었으며, 1905년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가 되었다.

이해 다시 궁내부특진관이 되고 칙임관3등에 올랐다. 같은해 3월 시강원부첨사(侍講院副詹事)가 되었으며, 10월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되어 외직에 나아가기도 하였다. 1909년 규장각지후관(奎章閣祗候官)이 되었고 이어 칙임관2등에 올랐다.

1910년 4월 훈2등에 서훈되었다. 고종·순종조 때의 민씨 척족의 일인으로서 미국·영국·벨기에 등의 특명전권공사를 지내면서 조선조 말기의 외교사절로 크게 활약하였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순종실록(純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속음청사(續陰晴史)』

  • - 『고종시대사』3∼6(국사편찬위원회,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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