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응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참판,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가백(嘉伯)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사망 연도1662년(현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문원박사|지평|좌부승지|대사간|병조참의|좌부승지|대사간|이조참판|우참찬
  • 출생 연도1578년(선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5월 11일
민응형 글씨 미디어 정보

민응형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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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참판,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가백(嘉伯). 민총(閔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치중(閔致中)이고, 아버지는 승지 민호(閔頀)이며, 어머니는 홍익세(洪翼世)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보임되었다.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한때 양근(揚根)으로 퇴거했다가 1615년 승문원박사를 거쳐, 1621년 분병조정랑(分兵曹正郎)에 임명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집의(執義)·교리·사간·동부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 등을 두루 거치면서, 시폐(時弊)나 언로(言路)가 막혀있는 문제점을 간하였다. 또한 인조가 경연(經筵)을 폐지하자, 신진 유신들이 국왕의 얼굴도 모른다며 유신들을 만나 대화할 것을 강력히 청하는 등 바른말을 서슴지 않아 이름이 있었다.

1643년(인조 21) 대사간이 되고, 곧 이어서 병조참의가 되어 최명길(崔鳴吉)·김류(金瑬)·심기원(沈器遠) 등 대신들을 탄핵했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한 때 추고(推考)되기도 하였다. 그 뒤 다시 좌부승지·이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으로 임명되었을 때, 김류를 공척(攻斥)하다가 순천부사로 출보(出補)되었다.

그러나 인조와 김류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1646년 다시 대사간으로 임명되었고, 순천에서 상경하여 동작진(銅雀津)에 이르러 강빈(姜嬪)의 옥사(獄事)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길로 입궐하여 강빈을 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왕의 노여움을 크게 샀다. 이에 강빈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파직을 자청하고 벼슬을 떠났다.

1649년 인조의 노여움이 풀려 안변부사(安邊府使)에 임명되었다가 효종이 즉위하면서 다시 부제학으로 돌아왔다. 그 뒤 대사간·부제학·병조참판·대사성·대사헌·예조참판·이조참판·공조참판 등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면서, 왕도(王道)를 설파하고 당쟁의 폐를 논하였다.

또한 궁가(宮家)에서 전장(田庄)을 두는 폐단을 극간하고 김육(金堉)의 경제 정책에 도움을 주는 등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민응형의 논리가 공명정대했기 때문에 군왕을 비롯하여 이해가 엇갈린 당인(黨人)들도 감히 민응형을 해치지 못하였다. 1660년(현종 1) 공조판서를 거쳐 다음 해 우참찬이 되었다.

당시 윤선도(尹善道)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 문제로 서인(西人)에 의하여 삼수(三水)로 귀양갔을 때 누구도 무고함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민응형이 윤선도의 무고함을 주장하여 서인의 노여움을 샀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1662년 우참찬 재직 중에 85세의 나이로 죽었다. 일생을 광해군과 인조·효종·현종에 역사하면서 직언으로 이름이 났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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