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원명(元明). 1888년(고종25)에 시강원겸필선(侍講院兼弼善)이 되고, 1892년에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같은 해 홍문관부제학, 이조참의, 시강원겸보덕을 차례로 역임하였으며, 1893년 1월에는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그 해 2월에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며, 1895년 6월에는 왕후궁대부(王后宮大夫)가 되었다. 그 해에 경상북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경모궁제조(景慕宮提調)를 역임하였다. 1897년에는 시강원첨사, 예모관첨사의 직을 거쳐 이듬해에는 중추원 1등의관이 되었다.
회계원경(會計院卿)을 거쳐 1899년에는 평안남도관찰사,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902년에 궁내부특진관, 봉상시제조(奉常司提調), 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를 지냈다. 1905년에는 내장사장(內藏司長)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이 되었으며, 그 해 10월에는 다시 궁내부특진관이 되고, 이듬해에 봉상시제조, 홍문관부학사(弘文館副學士)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