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동부승지, 우부승지,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1540년 박사가 되었다. 이듬해 이준경(李浚慶) 등과 함께 재이(災異)를 물리치려면 성의를 다하여 하늘을 감동시켜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1543년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가 되고 이듬해 우문학(右文學)이 되었다.
1547년(명종 2)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 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을 거쳐 교서관교리 및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지냈다. 1549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재직 시에 상소를 올려 능침(陵寢)의 절에서 소란을 일으킨 유생들을 정거(停擧)시키고 절에 가지 못하도록 금하게 되면 왕이 이단(異端)을 숭상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듬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임명되었다가 곧바로 암행어사가 되어 수령들의 부정을 감찰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1551년에 다시 황해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었으며, 1553년 동부승지를 거쳐 우부승지를 지냈다. 1555년 참찬관(參贊官) · 좌승지를 거쳐 특명으로 공조참판이 되었다가 이듬해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그는 글씨에 능하여 많은 금석문(金石文)을 남겼고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인종실록(仁宗實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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