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8년 3월 7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3년(고종 30) 2월 25일
  • 출생지전라북도 남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흥수 (춘천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 해 3월 19일 장수에서 박정주(朴政柱)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3월 23일 남원 천도교가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1,000여 명의 시민과 합세하여 참가하였다.

그 해 8월경 서울에서 이충모(李忠模) · 김형준(金炯俊) · 양재명(楊在明) 등과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를 조직, 장수군 회장에 추대된 뒤 장병준(張炳俊)을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에 파견하여 국내의 정세를 보고하게 하고 상호연락을 도모하게 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 기념행사로 유진상(兪鎭商)의 집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방법을 협의하고, 격문을 인쇄하여 대전 · 대구 · 마산 · 목포 등지에 밀송하여 살포하도록 하였다.

그 해 8월 중순경 임시정부로부터 보내온 군자금납입통지서를 대한국민회 전주지회로 보내어 장봉한(張鳳翰)으로부터 850원을 모금하였다.

한편, 천도교에서 실시하는 계몽강연에 참여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에서 붙잡혀 1022년 2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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